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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중앙공원 압각수를 통해 무심천의 유래를 되짚어 보고 야사에서는 무심천의 유래를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충청북도에서 펴낸 '충북100년'에 나온 무심천 전설

무심천 전설 관련 이미지

무심천가에 자그마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여인에게 이제 다섯 살 된 아들 하나가 유일한 낙이요 희망이었습니다. 그의 집에서 서원경을 향해 들어가는 길목을 가로질러 흐르는 무심천에는 통나무 다리가 있어서 어린이나 부녀자들은 혼자서 건너기가 힘겨운 곳이었습니다.

더구나 장마가 지는 날에는 나무다리가 물에 떠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어느 해 모진 장마가 지난 뒤, 새로 놓은 통나무다리로 무심천을 건너는 사람들은 푸른 물이 다리 밑을 감듯이 빙빙 돌고있어 위험스럽기만 했습니다.

대원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행자승 한 사람이 탁발을 나왔다가 이곳 모자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각 고을을 돌아다니며 탁발을 하던 행자승은 몹시 피곤했습니다. 그는 여인의 집으로 들어와서 시주를 대신해서 잠시 피곤한 다리를 쉬어가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마침 밖에 나가 볼일을 보고 올 일이 있는 터라 잘되었다며 어린애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행자승은 염려말고 다녀오라며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마루의 벽에 기대앉았습니다.

행자승은 두 다리를 뻗고 벽에 등을 기댄 채 편한 몸으로 마당에 놀고 있는 어린애의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사리문 안에서 흙장난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은 정말 평화스러웠습니다. 잠시 후 행자승은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왁자지껄하는 소란과 여인의 통곡소리에 잠을 깬 행자승은 그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어린애의 젖은 시체를 안고 절망스런 모습으로 여인이 서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행자승은 뒷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 일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뒤에는 딱하고 가엾은 눈과 원망스러운 눈동자가 섞인 마을 사람들이 착찹한 눈초리로 행자승을 바라보았습니다. 행자승이 피로에 지친 몸을 벽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을 때, 어린애는 무심천 통나무다리에 올라서 개울을 건너다 굴러 떨어져 목숨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어린애를 화장하여 물에 뿌리고 삭발한 뒤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대원사 주지승은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가까운 이웃동네의 크고 작은 절에 통보하여 주지승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무다리를 걷어낸 뒤 그 자리에 튼튼한 다리를 세우기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대원사 주지스님은 동쪽에 자리잡은 선도산 중턱에 막장을 치고, 승려들로 하여금 돌을 캐내어 무심천으로 운반하게 하였는데, 그 승려의 수가 5백이 넘었고 어린애를 위한 진혼경 소리와 불경소리, 그리고 돌을 다듬는 정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다리를 놓기 위한 역사가 시작된 지, 꼭 백일만에 무심천에는 돌로 이어진 석교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리가 개통되던 날 아들을 잃은 여인은 돌다리 난간을 잡고 숨져간 아들의 명복을 빌며 하염없는 눈물을 지었습니다. 그 후 이 다리는 남석교라 불리웠으며, 동쪽에 막을 치고 돌을 다듬던 마을을 동막골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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